‘전략적 지평 확장’의 첫걸음 제주민군복합항 방문 소감 1)

4년 전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지역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제주민군복합항 건설계획과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후 4년이 지난 5월에 개최된 ‘제주포럼’ 참가 기간 중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초청으로 잠시 시간을 내어 최근에 완공된 제주 민군복합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주변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대한민국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 시, 제주민군복합항의 가장 큰 이점은 동중국해를 접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서태평양을 관통하는 주요 해상교통로에 대한 접근을 더욱 용이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제11회 제주포럼 해양안보 세션 개최 결과

▶ 주제 : 제11회 제주포럼 해양안보 세션 개최 결과
▶ 일시/장소 : 2016년 5월 26일(목) 오후 14:00 – 15:20(80`) /제주도 국제컨벤션 센터
▶ 대주제 : 동북아 해양질서와 지역협력: 협력상승의 장 / Northeast Asian Maritime Order and Regional Security Cooperation: Looking for Cooperation Spirals
▶ 주관 : 한국해양전략연구소(KIMS)
▶ 참가대상 : 국내․외 해양안보 및 국제법 전문가 및 학자 약 60명
▶ 사회 : 이서항 소장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제75회 (국제)

▶ 제75회(국제)
▶ KIMS, 제11회 제주포럼에서 “해양안보세션” 개최 : “동북아 해양질서와 지역협력” 논의
▶ 2016년 5월 26일(목) 14:00-15:20

원양 훈련의 추억 [愚羊短想, 2016.01.19]

DE-72함

DE-72함

필자는 물론이고 1963년에 임관한 해사 17기 졸업생들에게 1월 19일은 매우 각별한 날입니다. 다른 사정 없이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생도라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외국 땅을 밟은 날이니까요.
난생 처음 적도를 넘어 외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마음 설레고 젊은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습니다.

DE-71, DE-72함에 배치되어 그 해1월 14일 해사 17기생이 진해항을 떠날 때만 해도 잔잔한 바다에 날씨도 좋았고 하늘을 나를 듯 기분도 좋았습니다. 가덕도를 지나 외해로 나가면서 조금씩 높아지는 파도가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지만 주간에는 선체보수(damage control), 해상보급 훈련, 야간에는 육분의(六分儀, Sextant)를 들고 함교에서 천측(天測) 항해 연습을 하고 견습 당직 사관으로 함교(Bridge) 당직을 서는 일이 파도와 멀미 때문에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뒤따라오던 DE-72함이 파도에 묻혀서 보였다 안보였다 하리만치 큰 파도가 몰아치는데,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잘 먹지 못하고 억지로 먹은 것은 거의 다 토하며 파도와 싸우고 그러면서도 계획된 훈련을 모두 강행하며 항해를 했던 원양항해 훈련은 “해군이 되면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구나” 하는 엄중한 현실을 확실히 알게 해주었습니다. 고생 끝에 출항 5일 만인 1월 19일, 첫 기항지인 마닐라 항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부두에 정박하니 현지 교포들이 꽃 다발을 들고 환영을 나와 주었고 낯선 열대 식물과 처음 보는 이국의 풍경이 눈부셨습니다. 항해 중에는 내내 갑판을 기다시피 기를 펴지 못하며 훈련과 교육을 힘들어 했던 대표적 멀미 꾼 몇몇 동기생들이 언재 그랬었냐는 듯 신바람이 나고 앞장서서 상륙 준비를 하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마닐라에 상륙해서 그 나라를 처음 둘러 보며 “필리핀은 참 잘 사는 나라로구나” 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백화점은 대리석 건물에 깨끗했고 상품도 고급스러웠습니다. 주민들도 모두가 여유로워 보이고 부두시설도 주변 환경도 모두 깨끗하고 훌륭했습니다. 도착하는 날 저녁에 김용식 당시 주 필리핀 대사께서 생도들을 만찬에 초청해 주셨습니다. 대사관저로 가는 차에서 지나가는 풍경을 보니 도로는 깨끗하게 포장이 되어있고 도로 주변의 건물, 주택, 가로수가 모두 잘 다듬어져 있어서 매우 아름답고 윤택해 보였습니다. 대사관저로 가는 차 위에서 “우리 나라는 언제 이렇게 잘 살게 될까?” 생각하며 한숨 짓기도 했습니다. 대사관저에 도착하자 생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꼭 잡아 주시며 다정한 미소로 소탈하게 우리들을 맞아 주셨던 거구의 김대사님 첫 인상이 53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워낙 가난했으니 대사관도 넉넉함이란 찾아 볼 수 없는 궁핍한 살림살이에서 생도들과 기동전대 참모 등 100여 명의 손님을 그리 넓지도 않았던 대사 관저에 초대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행사였을 것입니다. 듣고 보니 좋은 대접을 하고 싶어서 좋은 한국 쌀을 미리 마련하였고 몇 분 안 되는 대사관 직원 사모님들과 교포 몇 분이 며칠씩 교대로 일을 하며 김치 깍두기와 불고기를 준비했다고 하였습니다. 바다에서 거친 파도를 만나 닷새 동안 한끼도 잘 먹지 못했던 생도들이 쌀밥과 불고기와 알맞게 맛이 들었던 김치 깍두기를 참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차를 마시는 시간에 김용식 대사께서 생도들에게 짧은 환영사를 해 주셨습니다. 투박한 경남 통영 사투리의 감동적 환영사를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필자는 핵심 부분이라 할 다음 요지의 말씀은 평생 잊을 수 없이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생도들이 보시는 대로 필리핀은 잘 사는 나라입니다. 개인 소득이 우리나라의 3배입니다. 앞으로 기회도 희망도 많은 나라입니다. 필리핀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필리핀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36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400여 년의 오랜 식민지 통치 아래 힘들고 가난한 역사를 견뎌온 나라입니다. 우리도 앞으로 잘사는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얼마나 자기의 일에 열중하고 헌신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 생도들이 실력 있고 책임감 강한 해군 장교가 되어 우리나라의 바다를 굳게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는 길입니다…………..

1963년 당시의 한국은 참으로 가난하였습니다. 몇 주 전에 가족과 같이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개관 당시와 그 후에도 몇 차례 다녀 왔지만 그 때는 일행들이 있어서 동행하느라 마음껏 살펴 보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늙은이 내외가 서둘 것 없이 차분하게 기념관을 살펴 보았습니다. 거기서 우리 해사 17기생이 원양항해를 다녀오고 해사를 졸업했던 1963년이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을 향하여 용트림을 하며 폐허를 딛고 일어서기 시작했던 매우 뜻 있고 각별한 해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1963년 통계를 구하지 못해서 그 해의 소득 내용은 모르지만 기념관에서 본1961년 세계은행 통계에 의하면 그 해의 국민 개인당 GDP(GDP Per Capita)가 미국 2,935불, 일본 564불, 말레이시아 287불, 필리핀 270불, 북한 125불, 방글라데시 93불, 남한 92불이었습니다. 당시의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1963년에 서독광부 제1진의 파견이 시작된 이래 총 7,936명의 광부들이 서독 탄광에서 마르크화를 벌어들였고 1965년에 파견이 시작되었던 간호사는 총 10,032명이 서독에 가서 주로 시체 처리하는 일을 하며 마르크화를 벌어서 한국에 송금 하였습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마르크화 송금은 우리나라 외화획득의 효시이고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1962년에 시작되었고 “수출입국 (輸出立國)”의 구호 아래 2년 후인 1964년에 1억 불 수출을 겨우 달성하였습니다.

그 후 50여 년이 지난 2014년, IMF 통계를 보니 한국의 1인당 GDP는 28,101불로 3만 불에 근접하지만 필리핀은 2,865불로 한국의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지금 필리핀은 매우 가난하고 치안도 불안한 나라입니다. 한국은 GDP 순위 세계 13위, 무역규모 8위, 수출액 7위의 경제 강국이 되었으나 필리핀은 이렇다 할 기간 산업이 없고 싱가포르, 홍콩 등 동남아 부국(富國) 들에 가정부로 취업하여 대부분 혼기(婚期)도 놓치며 외화를 벌어서 모국에 송금 하고 있는 필리핀 젊은 여성들의 외화벌이가 국가적으로 가장 소중한 외화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에 한국과 필리핀 두 나라 사이에서 왜 이렇게 엄청난 경제적 역전(逆轉) 현상이 발생 하였을까요?

필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첫째로, 거의 동시대에 한국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고 필리핀에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마르코스 두 분은 1917년 같은 해에 출생한 동갑내기이고 독재자라는 국제적 지탄을 받은 것도 비슷하고 통치 기간도 18년과 21년으로 비슷하고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면에서도 비슷하지만, 박 대통령은 최빈국 한국을 배고픈 설움에서 벗어나 부국이 되게 하였고 마르코스 대통령은 부국이었던 필리핀을 배고픈 빈국이 되게 하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절망을 넘어서서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외치며 온 국민을 희망으로 이끌었지만 마르코스는 독재와 축재로 국민의 희망과 비전을 앗아갔습니다. 두 분의 사후에 보니 박대통령은 오래 살았던 신당동 주택 한 채만 남겼지만 마르코스는 출처 불명의 막대한 재산을 마르코스 일가에게 남겼습니다. 박 대통령은 동시대의 걸출한 경영들인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경제 지도자로 발탁하여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일으키게 도왔지만 마르코스 대통령은 자기 가족들로 하여금 국내 굴지의 재벌 가문이 되게 하였을 뿐, 국가 경제는 파탄으로 내 몰았습니다.
해방 후 좌익운동이 애국이고 스탈린, 김일성과의 협상과 좌우합작으로 통일 조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일견 매우 정당해 보이는 당위성으로 인한 혹심해했던 혼란시기에 뛰어난 국제정치 감각과 국내외 정세에 대한 확고한 판단에 기반하여 한반도 현실을 직시하면서 많은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5.10선거를 통하여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이끌었던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초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준 박정희 경제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보내주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한국과 필리핀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 보며, 비전과 실천력을 구비한 사심(私心) 없는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한 나라와 국민들을 위하여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둘째로, 일제의 잔혹사와 6.25참상을 겪으며 폐허의 맨바닥에서 이 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루어 온 현재 90~60대의 노인 세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90/60세대는 단군 이래 5000년의 한국 역사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민족의 새 역사를 쓰신 분들입니다. 그 분들이야 말로 김용식 대사님의 환영사 말씀대로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중하고 헌신하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 보지 못하고 옆 눈 한번 줄 겨를 없이 일생을 일에 파묻힌 채 살아오며 고속도로를 만들고 지하철을 만들고 학교와 병원을 세워오신 분 들입니다. 몇 달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국제 시장”을 두 번 보았습니다. 처음 볼 때는 많이 울었지만 두 번째 볼 때는 안 울 것으로 생각 했는데 두 번째도 역시 울었습니다. 우리가 살아 온 너무나 힘들었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에 눈물 없이 영화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9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오늘의 한국 노인들이야 말로 서로가 서로를 존경 할만한 “조국 산업화”의 역군이었음을 자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가지만 더 얘기한다면, 한국 전쟁 후 한미양국은 확고한 상호방위협정을 유지하며 한미 공동으로 한반도 안보체제를 견지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한미방위협정과 그에 따른 미군의 국내 주둔은 직간접적으로 국제 자본들이 안심하고 한국에 투자를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습니다. 그 덕분으로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도 불구하고 1962년 국제 석유 재벌 Gulf Oil이 한국 투자를 결정한 이래 미국을 필두로 한 외국 자본들이 다투어 한국에 진출하여 민족 자본 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획기적 경제 도약을 성취하는 투자기반을 제공 하였습니다. 반면, 필리핀은 1973년 마르코스의 신 외교 정책에 따라 친미 정책을 버리고 75년 중국, 76년 소련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한편 군사 기지 협정을 포함한 미국과의 각종 협정을 약화 또는 폐기하였습니다. 1992년 11월 미 해군이 Subic Bay에서 완전히 철수한 이래 미국을 위시한 서방측의 국제 자본들이 대 필리핀 투자를 외면하였고 그것이 필리핀 경제 발전에 결정적이고 심각한 저해 요소가 되었습니다. 필리핀은 늦게야 잘못을 깨닫고 22년 만인 2014년에 미국과 방위협정 제고(提高)협정(EDCA-Enhanced Defense Cooperation Agreement)을 체결 하였습니다.

53 년 전 해사 생도 4학년이었던1963년의 원양훈련을 생각하면 김용식 대사님의 숙연했던 환영사가 생각나고, 한국과 필리핀 사이의 극적이라 할 만한 경제의 역전 현실이 생각 나고, 이어서 이승만, 박정희 두 분 전직 대통령과 한미안보 협력체제에 대한 고마움이 생각나고, 그런 지도자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생각할 때마다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문제도 많고 잘 안 될 것 같은 부정적 요소들이 도처에 산재하지만, 근면과 은근과 끈기의 우리 대한민국 앞날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라는 애국가 가사대로 세계 속에서 계속 힘차게 약진해 나아갈 것입니다.

제6회 해양학술논문 현상공모 우수작 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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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151111() 12:00
장 소 : 해군본부 무궁화홀
참 석 : 함명수, 김영관, 이은수, 최상화, 장정길 등 역대 해군참모총장 및

현역, 예비역 250여 명

 

수상자 현황

구분 성명 소속 논문 제목
최우수상 안한별 고려대학교 獨島의 實效的 支配와 海洋 戰略資産으로서의 國際法
우수상 정광호 해군 소령 태평양 전쟁기 일본에 대한 미국의 태평양 해양전략 – 지정학적 인식과 도전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
신문경 해군사관학교 1949년 美 제독들의 반란이 한국 해군에게 주는 시사점
장려상 김동욱 해군 소령 함 건조사업 낙찰자 결정, 적격심사가 최선인가?
임평섭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신라 지증왕대 해양 진출과 우산국 정복 – 사회경제적 변화와 적극적 해양진출이 국가성장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
최기일 육군 소령 전통적 해양력 이론의 고찰과 해양전략사상에 관한 연구
최치원 해군 소령 미래경제의 핵심산업인 드론(무인기)의 해양 분야 활용방안 연구 – 상용 드론의 해양 분야 활용과 미래해군전력과의 접목방향을 중심으로 –
김준혁 해군사관학교 제주해군기지의 발전방향에 대한 연구
이창희 해군사관학교 해군·해경의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속의 한계와 단속체계의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

 

제70회 (국제)

▶ 주 제 : 동아시아 해양 더 나은 미래를 위한 30년(Footprint 70 Yars and Forecast 30 Years of Maritime History)
▶ 일 시 : 2015년 10월 20일(화)
▶ 장 소 : 부산 벡스코 (bexco)
▶ 주 관 : 해양수산부, 부산광역시, 부산일보사, 한국 해양수산개발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등 약 20개 해양관련 기관 및 연구소
▶ 참가자 : 약 2,000여 명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당선자, 서병수 부산광역시장 등 국내외 해양 관련 기관 종사자)

제69회 (국제)

▶ 주 제 : 동아시아 해양안보환경 변화와 다자간 해양안보 협력 방안
(Changing Maritime Security Environment in East Asia and Measures to Enhance Multilateral Cooperation)
▶ 일 시 : 2015년 10월 19일(월)
▶ 장 소 : 부산 웨스틴 조선호텔 대회의실
▶ 주 관 : 대한민국 해군, 한국해양전략연구소, 해로연구회
▶ 참가자 : 약 500여 명
(한국 해군참모총장, 미국 7함대사령관 등 국내외 한반도 주변국 해양안보관련 학자 및 전문가)

제68회 (국제)

▶ 주 제 : 한국-중국 해양협력 도전과 기회(Korea-China Maritime Cooperation: Issues and Challenges)
▶ 일 시 : 2015년 10월 12일(월)
▶ 장 소 : 베이징 크라운 플라자 호텔 대회의실
▶ 주 관 :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중국 남해연구원(NISCSS)
▶ 참가자 :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중국 남해연구원, 중국 외교부, 중국 해양국, 중국 해양경찰, 중국 국방대학교, 한국해양연구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 약 200여 명

제67회 (국제)

▶ 주 제 : 국가 해양안보·안전역량 강화를 위한 해군·해경 협력증진 방안
▶ 일 시 : 2015년 9월 16일(수) 10:00~15:30
▶ 장 소 : 밀레니엄 서울힐튼(그랜드볼룸)
▶ 주 관 : 한국해양전략연구소
▶ 후 원 : 대한민국 해군,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
▶ 참석인원 : 350명 (미국 해안경비대사령관 및 주한 미 해군사령관 등)

제66회 (국내)

▶ 주 제 : 동아시아 해양갈등 양상과 해로안보
▶ 일 시 : 2015년 9월 11일(금) 14:00~18:00
▶ 장 소 : 플라자호텔
▶ 주 최 : 한국해양전략연구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 참 가 : 5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