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코스트 가드 함정 한반도 파견의 국제법적 시사점

지난 2월 말 하노이 미·북 비핵화 회담이 결렬된 후 유엔 안보리 대북전문가 패널의 연례보고서 발표와 함께 미국 연안 경비대(U.S. Coast Guard) 함정(버솔프-Bertholf함)이 한반도에 파견된 바 있었는데 이에 대한 국제정치적 의미를 두고 관심이 집중되었다. 미국 함정의 파견은 얼핏 해상을 통한 대북제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대북 제재위반에 대한 해상 단속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유엔 안보리 결의안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북제재는 2006년 제1차 핵실험(1718호)에서 2017년 12월 탄도미사일 발사실험(2397호)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간 12번에 걸쳐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는 모든 유엔 회원국이 준수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이다. 회원국은 대북 제재 준수여부를 감시하고 위반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를 가진다. 해상에서 대북 제재는 크게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두 가지 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PSI에 의한 대량살상무기 운반선박의 차단(interdiction)은 회원국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며 유엔 차원의 국제법적 제재는 아니다.

국제관함식을 통해서 본 중국해군의 현재와 미래

중국 시진핑 주석은 2019년 4월 23일 칭다오(靑島)에서 개최된 중국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관함식을 주관했다. 이번 관함식에는 미국이 불참한 가운데 한국·러시아·일본 등 20여 개국 함정과 60여 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중국은 10년 전 60주년 국제관함식과는 달리, 항공모함·전략핵잠수함·미국 항모킬러인 (중국형) 이지스함 등을 참가시켜 이번 관함식을 통해 ‘강군몽’이 실현되고 있음을 세계에 과시했다.

중국은 18,000여km에 이르는 긴 해안선과 약 470만㎢에 달하는 해역을 영해로 향유하고 있다. 중국해군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미국 해군에 도전하는 강한해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첫째, 중국 지도부의 해양력이 역사에 미친 교훈과 중요성 인식이다. 세계 4위의 국토면적을 가진 중국은 송나라에서 원나라까지 정크(Junk)선(중국어: 戎克船)을 이용한 해상실크로드 장악으로 부를 축적한 해양강국이었다. 그러나 명나라 주원장은 1371년 연안주민들이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지시켰다. 명의 3대 황제인 영락제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7차례의 정허(鄭和)의 대원정(1405.5-1433.7)도 300여 년간의 해금정책을 바꾸지 못했다. 그 이후 바다를 버린 중국은 청나라를 거치면서 내륙중심으로 회귀하게 되고, 청 말기 해양강국들의 침략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중국지도부는 미국이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를 분석하는 가운데 루즈벨트 대통령이 마한제독의 명저—’해양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를 읽고 ‘백색함대’를 만들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 수 있었다는 교훈을 도출하고, 해양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2004년 국방백서’에도 중국군에게 ‘제해권’(Command of the Sea) 확보 임무를 포함시켰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전략도 송나라와 원나라가 누렸던 과거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중국의 국제관함식과 해군력

금년 4월 23일은 중국 해군 창립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산둥성 칭다오(靑島)에서 60여개국의 대표단과 주요국 함정이 참가한 국제관함식이 개최됐다. 10년 전인 2009년에는 14개국에서 함정 21척이 참가한 것과 비교하면 규모가 대폭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건조된 난창(南昌; 055형) 구축함 등 신형 함정을 볼 수 있는 드문 경험이 되었다. ‘해양강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위상과 군사력을 과시하는데 이만한 행사가 없다. 그런데 미국은 불참했다. 미국 그리고 중국의 주변에 있는 미국의 우방에게 도전이자 위협이 되는 중국의 ‘잔치’를 축하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일본·인도·프랑스·러시아는 대형 함정을 파견했다.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2009년 4월 60주년 기념식에는 독도함과 강감찬함을 보내는 성의를 보였다. 다만 작년 10월 제주 관함식에는 행사 하루 전날 중국측의 불참 통보가 있었다. 국제적 매너를 따져야겠지만 중국과 교류하는 우리 정부·재계·학계 등에는 종종 있는 일이다.

70년은 분명 긴 세월이다. 다만, 국제관함식에서 보여주는 외형적 위용이 아니라 실제 중국 해군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일까? 중국 해군의 시작은 매우 초라했다. 1949년 중국이 건국할 당시 국민당 정부로부터 노획한 구형 ‘선박’은 약 200척이었다. 또한 지상전 위주의 ‘인민전쟁’ 전략하에서 해군은 육군의 부속부대에 지나지 않았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만 30년간 육군 장성인 샤오진광(肖勁光, 1950.1-1980. 1 재임) 대장이 해군 사령관을 지낸 것이다. 중국 해군은 1950년대 소련의 지원으로 기반을 조성하였고, 1960년대에는 중·소분쟁으로 인해 자력갱생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