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대만 총통 당선과 양안관계

최근 거행된 대만 총통선거에서 민진당(民進黨)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집권여당인 국민당(國民黨)의 주리룬(朱立倫)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금번 대만 총통선거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마잉지우(馬英九) 정권이 등장한 이후 추구해온 親중국 경사노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당 집권 하에서 1%대로 가라앉은 경제침체에 대한 좌절이다.

마잉지우 총통은 대륙에 대한 접근정책을 통해서 2010년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 ECFA)을 비롯한 20개의 교류협정을 체결했고 양안간 교역량도 50% 이상 증가시켰다. 그 결과 대만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30%에 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만 기업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대만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대만 경제는 연평균 성장률이 5%-6%대에서 1%대로 급락했다. 이에 따라 민진당이 주장한 정권심판론이 대만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총통선거와 함께 치러진 입법원 선거에서도 민진당은 전체 의석의 60.1%를 차지하였다.

북한 SLBM 개발 및 ‘수소폭탄’ 실험에 대한 대응

20세기를 통하여 인류가 얻은 잠수함과 관련한 중요한 교훈은 잠수함을 보유한 국가들의 궁극적 목표는 원자력잠수함을 보유하여 군사적 강대국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은 지상이나 공중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보다 수중에서 은밀하게 작전하는 잠수함에 배치하여 적으로부터의 피격시 반격을 담보하는 ‘2격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 적의 공격의지를 사전에 꺽는 지름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잠수함과 핵무기를 동시에 보유한 국가들이라면 그 최종목표는 당연히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원자력 잠수함(SSBN)을 보유하는 것이며, 이러한 전력을 갖춘 국가들은 예외 없이 세계적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지구상에서 핵무기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 SLBM)을 동시에 보유한 나라는 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영국ㆍ프랑스 등 5개국 뿐이다. 이들이 곧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70여년간 인류의 역사는 이들 국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왔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이외 국가들 중에는 인도가 2015년 11월 25일 최초로 잠수함(INS Arihant-SSBN)에서 SLBM 발사시험에 성공한 바 있다.

제117회 모닝포럼에 초대합니다.

▶ 주 제 :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듣는다 : 새해 해양수산 정책 방향」
▶ 연 사 :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 일 시 : 2016년 2월 18일 (목) 07:30∼09:15
▶ 장 소 : 전쟁기념관 뮤지엄홀 크리스탈볼룸 (2층)

안녕하십니까?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더욱 건강하시고 올 한 해도 좋은 결실을 거두시기를 기원합니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는 해양수산부 김영석 장관을 연사로 초청하여 금년도 첫 번째 KIMS Morning Forum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김영석 장관께서는 연초 국정수행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세계 5대 해양강국을 목표로 하는 해양수산부의 새해 정책 방향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부디 참석하시어 우리 정부의 새로운 해양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21세기 신 성장 동력인 .해양수산.에 관한 고견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원양 훈련의 추억 [愚羊短想, 2016.01.19]

DE-72함

DE-72함

필자는 물론이고 1963년에 임관한 해사 17기 졸업생들에게 1월 19일은 매우 각별한 날입니다. 다른 사정 없이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생도라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외국 땅을 밟은 날이니까요.
난생 처음 적도를 넘어 외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마음 설레고 젊은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습니다.

DE-71, DE-72함에 배치되어 그 해1월 14일 해사 17기생이 진해항을 떠날 때만 해도 잔잔한 바다에 날씨도 좋았고 하늘을 나를 듯 기분도 좋았습니다. 가덕도를 지나 외해로 나가면서 조금씩 높아지는 파도가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지만 주간에는 선체보수(damage control), 해상보급 훈련, 야간에는 육분의(六分儀, Sextant)를 들고 함교에서 천측(天測) 항해 연습을 하고 견습 당직 사관으로 함교(Bridge) 당직을 서는 일이 파도와 멀미 때문에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뒤따라오던 DE-72함이 파도에 묻혀서 보였다 안보였다 하리만치 큰 파도가 몰아치는데,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잘 먹지 못하고 억지로 먹은 것은 거의 다 토하며 파도와 싸우고 그러면서도 계획된 훈련을 모두 강행하며 항해를 했던 원양항해 훈련은 “해군이 되면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구나” 하는 엄중한 현실을 확실히 알게 해주었습니다. 고생 끝에 출항 5일 만인 1월 19일, 첫 기항지인 마닐라 항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부두에 정박하니 현지 교포들이 꽃 다발을 들고 환영을 나와 주었고 낯선 열대 식물과 처음 보는 이국의 풍경이 눈부셨습니다. 항해 중에는 내내 갑판을 기다시피 기를 펴지 못하며 훈련과 교육을 힘들어 했던 대표적 멀미 꾼 몇몇 동기생들이 언재 그랬었냐는 듯 신바람이 나고 앞장서서 상륙 준비를 하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마닐라에 상륙해서 그 나라를 처음 둘러 보며 “필리핀은 참 잘 사는 나라로구나” 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백화점은 대리석 건물에 깨끗했고 상품도 고급스러웠습니다. 주민들도 모두가 여유로워 보이고 부두시설도 주변 환경도 모두 깨끗하고 훌륭했습니다. 도착하는 날 저녁에 김용식 당시 주 필리핀 대사께서 생도들을 만찬에 초청해 주셨습니다. 대사관저로 가는 차에서 지나가는 풍경을 보니 도로는 깨끗하게 포장이 되어있고 도로 주변의 건물, 주택, 가로수가 모두 잘 다듬어져 있어서 매우 아름답고 윤택해 보였습니다. 대사관저로 가는 차 위에서 “우리 나라는 언제 이렇게 잘 살게 될까?” 생각하며 한숨 짓기도 했습니다. 대사관저에 도착하자 생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꼭 잡아 주시며 다정한 미소로 소탈하게 우리들을 맞아 주셨던 거구의 김대사님 첫 인상이 53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워낙 가난했으니 대사관도 넉넉함이란 찾아 볼 수 없는 궁핍한 살림살이에서 생도들과 기동전대 참모 등 100여 명의 손님을 그리 넓지도 않았던 대사 관저에 초대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행사였을 것입니다. 듣고 보니 좋은 대접을 하고 싶어서 좋은 한국 쌀을 미리 마련하였고 몇 분 안 되는 대사관 직원 사모님들과 교포 몇 분이 며칠씩 교대로 일을 하며 김치 깍두기와 불고기를 준비했다고 하였습니다. 바다에서 거친 파도를 만나 닷새 동안 한끼도 잘 먹지 못했던 생도들이 쌀밥과 불고기와 알맞게 맛이 들었던 김치 깍두기를 참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차를 마시는 시간에 김용식 대사께서 생도들에게 짧은 환영사를 해 주셨습니다. 투박한 경남 통영 사투리의 감동적 환영사를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필자는 핵심 부분이라 할 다음 요지의 말씀은 평생 잊을 수 없이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생도들이 보시는 대로 필리핀은 잘 사는 나라입니다. 개인 소득이 우리나라의 3배입니다. 앞으로 기회도 희망도 많은 나라입니다. 필리핀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필리핀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36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400여 년의 오랜 식민지 통치 아래 힘들고 가난한 역사를 견뎌온 나라입니다. 우리도 앞으로 잘사는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얼마나 자기의 일에 열중하고 헌신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 생도들이 실력 있고 책임감 강한 해군 장교가 되어 우리나라의 바다를 굳게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는 길입니다…………..

1963년 당시의 한국은 참으로 가난하였습니다. 몇 주 전에 가족과 같이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개관 당시와 그 후에도 몇 차례 다녀 왔지만 그 때는 일행들이 있어서 동행하느라 마음껏 살펴 보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늙은이 내외가 서둘 것 없이 차분하게 기념관을 살펴 보았습니다. 거기서 우리 해사 17기생이 원양항해를 다녀오고 해사를 졸업했던 1963년이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을 향하여 용트림을 하며 폐허를 딛고 일어서기 시작했던 매우 뜻 있고 각별한 해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1963년 통계를 구하지 못해서 그 해의 소득 내용은 모르지만 기념관에서 본1961년 세계은행 통계에 의하면 그 해의 국민 개인당 GDP(GDP Per Capita)가 미국 2,935불, 일본 564불, 말레이시아 287불, 필리핀 270불, 북한 125불, 방글라데시 93불, 남한 92불이었습니다. 당시의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1963년에 서독광부 제1진의 파견이 시작된 이래 총 7,936명의 광부들이 서독 탄광에서 마르크화를 벌어들였고 1965년에 파견이 시작되었던 간호사는 총 10,032명이 서독에 가서 주로 시체 처리하는 일을 하며 마르크화를 벌어서 한국에 송금 하였습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마르크화 송금은 우리나라 외화획득의 효시이고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1962년에 시작되었고 “수출입국 (輸出立國)”의 구호 아래 2년 후인 1964년에 1억 불 수출을 겨우 달성하였습니다.

그 후 50여 년이 지난 2014년, IMF 통계를 보니 한국의 1인당 GDP는 28,101불로 3만 불에 근접하지만 필리핀은 2,865불로 한국의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지금 필리핀은 매우 가난하고 치안도 불안한 나라입니다. 한국은 GDP 순위 세계 13위, 무역규모 8위, 수출액 7위의 경제 강국이 되었으나 필리핀은 이렇다 할 기간 산업이 없고 싱가포르, 홍콩 등 동남아 부국(富國) 들에 가정부로 취업하여 대부분 혼기(婚期)도 놓치며 외화를 벌어서 모국에 송금 하고 있는 필리핀 젊은 여성들의 외화벌이가 국가적으로 가장 소중한 외화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에 한국과 필리핀 두 나라 사이에서 왜 이렇게 엄청난 경제적 역전(逆轉) 현상이 발생 하였을까요?

필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첫째로, 거의 동시대에 한국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고 필리핀에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마르코스 두 분은 1917년 같은 해에 출생한 동갑내기이고 독재자라는 국제적 지탄을 받은 것도 비슷하고 통치 기간도 18년과 21년으로 비슷하고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면에서도 비슷하지만, 박 대통령은 최빈국 한국을 배고픈 설움에서 벗어나 부국이 되게 하였고 마르코스 대통령은 부국이었던 필리핀을 배고픈 빈국이 되게 하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절망을 넘어서서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외치며 온 국민을 희망으로 이끌었지만 마르코스는 독재와 축재로 국민의 희망과 비전을 앗아갔습니다. 두 분의 사후에 보니 박대통령은 오래 살았던 신당동 주택 한 채만 남겼지만 마르코스는 출처 불명의 막대한 재산을 마르코스 일가에게 남겼습니다. 박 대통령은 동시대의 걸출한 경영들인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경제 지도자로 발탁하여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일으키게 도왔지만 마르코스 대통령은 자기 가족들로 하여금 국내 굴지의 재벌 가문이 되게 하였을 뿐, 국가 경제는 파탄으로 내 몰았습니다.
해방 후 좌익운동이 애국이고 스탈린, 김일성과의 협상과 좌우합작으로 통일 조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일견 매우 정당해 보이는 당위성으로 인한 혹심해했던 혼란시기에 뛰어난 국제정치 감각과 국내외 정세에 대한 확고한 판단에 기반하여 한반도 현실을 직시하면서 많은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5.10선거를 통하여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이끌었던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초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준 박정희 경제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보내주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한국과 필리핀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 보며, 비전과 실천력을 구비한 사심(私心) 없는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한 나라와 국민들을 위하여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둘째로, 일제의 잔혹사와 6.25참상을 겪으며 폐허의 맨바닥에서 이 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루어 온 현재 90~60대의 노인 세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90/60세대는 단군 이래 5000년의 한국 역사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민족의 새 역사를 쓰신 분들입니다. 그 분들이야 말로 김용식 대사님의 환영사 말씀대로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중하고 헌신하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 보지 못하고 옆 눈 한번 줄 겨를 없이 일생을 일에 파묻힌 채 살아오며 고속도로를 만들고 지하철을 만들고 학교와 병원을 세워오신 분 들입니다. 몇 달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국제 시장”을 두 번 보았습니다. 처음 볼 때는 많이 울었지만 두 번째 볼 때는 안 울 것으로 생각 했는데 두 번째도 역시 울었습니다. 우리가 살아 온 너무나 힘들었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에 눈물 없이 영화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9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오늘의 한국 노인들이야 말로 서로가 서로를 존경 할만한 “조국 산업화”의 역군이었음을 자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가지만 더 얘기한다면, 한국 전쟁 후 한미양국은 확고한 상호방위협정을 유지하며 한미 공동으로 한반도 안보체제를 견지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한미방위협정과 그에 따른 미군의 국내 주둔은 직간접적으로 국제 자본들이 안심하고 한국에 투자를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습니다. 그 덕분으로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도 불구하고 1962년 국제 석유 재벌 Gulf Oil이 한국 투자를 결정한 이래 미국을 필두로 한 외국 자본들이 다투어 한국에 진출하여 민족 자본 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획기적 경제 도약을 성취하는 투자기반을 제공 하였습니다. 반면, 필리핀은 1973년 마르코스의 신 외교 정책에 따라 친미 정책을 버리고 75년 중국, 76년 소련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한편 군사 기지 협정을 포함한 미국과의 각종 협정을 약화 또는 폐기하였습니다. 1992년 11월 미 해군이 Subic Bay에서 완전히 철수한 이래 미국을 위시한 서방측의 국제 자본들이 대 필리핀 투자를 외면하였고 그것이 필리핀 경제 발전에 결정적이고 심각한 저해 요소가 되었습니다. 필리핀은 늦게야 잘못을 깨닫고 22년 만인 2014년에 미국과 방위협정 제고(提高)협정(EDCA-Enhanced Defense Cooperation Agreement)을 체결 하였습니다.

53 년 전 해사 생도 4학년이었던1963년의 원양훈련을 생각하면 김용식 대사님의 숙연했던 환영사가 생각나고, 한국과 필리핀 사이의 극적이라 할 만한 경제의 역전 현실이 생각 나고, 이어서 이승만, 박정희 두 분 전직 대통령과 한미안보 협력체제에 대한 고마움이 생각나고, 그런 지도자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생각할 때마다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문제도 많고 잘 안 될 것 같은 부정적 요소들이 도처에 산재하지만, 근면과 은근과 끈기의 우리 대한민국 앞날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라는 애국가 가사대로 세계 속에서 계속 힘차게 약진해 나아갈 것입니다.

KIMS News : 신간서적 발간을 알려드립니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는 동아시아 해양안보 정세와 전망 2015-16을 발간하였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가 3년 전부터 매년 초, 주요 연구사업의 하나로 펴내고 있는 「동아시아 해양안보 정세와 전망」은 이 지역의 해양안보 동향을 전문가의 시각에서 집약한 것이다. 이 연구서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전통적 해양안보 위협요인은 물론 비전통적 안보 위협요인의 평가와 함께 앞으로 전개될 상황의 전망까지 담고 있어 동아시아 해양안보의 정세를 주기적으로 파악하고 흐름을 조망하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동아시아 해양안보 상황은 한마디로 ‘지속(continuity)’ 대 ‘변화(change)’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즉, 지난 수십 년간 이 지역의 강자로 군림해 온 미국과 일본은 기존 질서의 지속을 바라고 있으나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현상유지(現狀維持)의 타파, 그리하여 기존질서로부터의 변화를 이루어내려는 전략과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 4차 핵실험의 파장과 대응 방향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안보지형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남북 8‧25 합의에서 명기한 대로 북한이 ‘비정상적인 상태’를 조성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이틀 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이상 남북간 군사적 긴장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미국이 B-52 전략폭격기를 띄워 무력시위를 하고, 한국을 중심으로 한∙미∙일 공조체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도 국제사회의 편에 서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지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입장에서는 현 상황을 ‘국제사회 對 북한’ 구도로 끌고 나가는 가운데, 대북 제재를 격상하고, 북한의 재래식 도발과 같은 긴장 조성 행위를 막는 것이 대응전략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물론 향후 북핵 대응방향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에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제재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4차 핵실험을 단행하기 전에 어느 정도 제재를 각오했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국제사회의 제재는 북한이 각오한 것 이상의 제재가 되어야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자신의 ‘오판’을 깨닫게 할 수 있다. 우리 정부 내 불협화음을 방지하고, 여론을 잘 관리해 나가면서, 국제사회가 한국의 편에서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외교력을 발휘하는 것이 관건이다.

‘북극의 신냉전(New Ice-cold War)’…21세기 ‘거대 게임’의 시작인가?

북극 지역의 얼음이 지구온난화로 최근 들어 빠르게 녹으면서 이 지역의 천연 자원과 북극 항로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북극 지역에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10년마다 빙하가 거의 10%씩 사라지고 있다. 특히 북극해의 해빙으로 선박들이 현재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운항할 수 있으나, 2030년이 되면 연중 항해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극해가 앞으로 중요한 교통요충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베링해에서 러시아 북부를 거쳐가는 북동항로(Northeast Passage: 북극항로-Northern Sea Route라고도 불림)를 이용하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기존 항로에 비해 거리는 20%, 운송기간은 8일이 단축된다. 북극해의 해저에는 엄청난 천연자원도 매장돼있다. 석유는 전 세계 매장량의 13%(900억 배럴), 천연가스는 전 세계 매장량의 30%(47조㎥)가 북극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극 지역의 천연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선 북극과 북극해에 인접한 미국,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러시아 등 8개국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들 8개국은 1996년 ‘북극 이사회(Arctic Council)’라는 협의체를 만들었다. 북극 이사회는 사실상 일종의 배타적 기구이다. 회원국들은 북극 지역의 천연자원을 독식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을 ‘옵서버’ 지위만 부여할 뿐 정회원국으로 가입시키지 않고 있다. 게다가 회원국들은 치열한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덴마크 정부는 2014년 12월 15일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로모노소프 해령은 그린란드 대륙붕이 자연적으로 확장된 것이라면서 90만㎢에 달하는 면적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자료를 제출했다. 러시아 정부도 지난해 8월 3일 CLCS에 로모노소프 해령이 자국의 동시베리아 초쿠가 반도 대륙붕에 연결됐다면서 120만㎢나 되는 면적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의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캐나다 정부도 자국의 대륙붕이 로모노소프 해령과 연결됐다는 입장이다.

‘갈등 상승의 악순환’을 ‘협력 상승의 장(場)’으로 바꿔야 : 새해 동아시아 해양안보 과제

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붉은 해가 온 세상을 훤히 밝혀주고 있으나 한국해양전략연구소(KIMS)의 잠망경을 통해서 보는 동아시아의 바다는 여전히 검푸르고 파고가 높다. 역내 해양문제에 대한 관련국들 간의 다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포함한 해양위기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 지역으로 꼽히는 동아시아의 최근 해양안보 상황은 한마디로 ‘지속’(continuity) 대 ‘변화’(change)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즉, 지난 수십 년간 이 지역의 강자로 군림해 온 미국과 일본은 기존 질서의 지속을 바라고 있으나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현상유지(現狀維持)의 타파, 그리하여 기존 질서로부터의 변화를 이루어내려는 전략과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기존 질서의 지속을 바라는 세력과 이에 변화를 가하려는 세력 간의 다툼은 곧 오늘날 동아시아의 바다가 미∙중∙일 등 강대국들이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는 ‘경쟁의 場’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다툼에서 어느 한 강대국의 정책과 행동은 다른 나라의 견제와 경쟁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말하자면, 어느 한 나라의 행동 때문에 해양에서 다른 나라의 대응과 위험 행동들이 이어져 갈등 양상이 나사못 모양처럼 비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동아시아 해양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련의 상호 위험 행동들을 전문가들은 ‘욕에는 욕’식의 ‘되갚음 현상’(tit-for-tat actions) 혹은 ‘갈등 상승의 나사못’(escalation spiral)이라고 서슴없이 부른다. 이는 군비경쟁 현장에서 흔히 목격되는 ‘작용-반작용’(action-reaction)의 공식과 똑같다. 지난 몇 년 전부터 최근까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바로 이러한 표현에 꼭 들어맞는 경우들이다. 예를 들면, 센카쿠/조어도 분쟁을 둘러싼 중∙일간의 악순환적 행동이나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인공도서 매립과 이에 대한 미국의 구축함 파견을 포함한 항행자유 작전(FONOPs)의 수행 등은 상호 보복적 성격을 띈 ‘갈등 상승의 나사못’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